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
이정하
슬픈 사랑아
내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네
내 가진 것은 빈손뿐
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
세상 모든 것이 나의 소유가 된다 하더라도
결코 그대 하나 가진 것만 못한데
슬픈 사랑아
내 모든 것 그대에게 주었으므로
더 이상 그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네
주면 줄수록 더욱 넉넉해지는
이 그리움밖에는
낮은 곳으로
이정하
낮은 곳에 있고 싶었다
낮은 곳이라면 지상의
그 어디라도 좋다
찰랑찰랑 고여들 네 사랑을
온몸으로 받아 들일 수만 있다면
한 방울도 헛되이
새어 나가지 않게 할 수 있다면
그래 내가
낮은 곳에 있겠다는 건
너를 위해 나를
온전히 비우겠다는 뜻이다
나의 존재마저 너에게
흠뻑 주고 싶다는 뜻이다
잠겨 죽어도 좋으니
너는
물처럼 내게 밀려 오라
즐거운 편지
황동규
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
해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
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
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
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
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
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
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
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
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
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
꽃
김춘추
내가 그의 이름 불러주기 전에는
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
내가 그의 이름 불러주었을때
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
내가 그의 이름 불러준 것처럼
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
누가 나의 이름 불러다오
그 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싶다
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싶다
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
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싶다